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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게임

보드게임의 분류

사람들은 예로부터 다양한 사물들을 이런 저런 기준에 의해 분류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서지학, 생물분류학 등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의 보드게임들을 데이터베이스화 해놓은 인터넷 사이트인 BoardGameGeek에 가보면 5000개가 넘는 보드게임들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이 보드게임들이 있지요? 그럼 이들을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요?

보드게임 관련 인터넷 쇼핑몰들을 방문해보면 특별히 일관성있는 분류방법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보드게임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테마와 메커니즘으로 분류하는 것이 비교적 널리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테마의 경우 다양한 테마 자체를 일관성있게 분류하기가 어렵고, 메커니즘의 경우 한 게임에 여러 가지 매커니즘이 사용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게임을 하나의 분류에 집어넣는 것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1. 테마에 따른 분류

우선 테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보드게임에 있어 테마가 없다면 게임이 무미건조해지고 게임에 몰입하기가 힘들 것입니다. (물론 바둑이나 고스톱과 같이 테마가 없지만 인기있는 게임도 있습니다.) 테마를 나누는 방법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크게 역사성의 유무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드게임 디자이너들이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라 그런지 많은 게임들이 유럽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게임들은 실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친근감이 있고 플레이어가 게임에 몰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테마로는 중세시대 군주들의 세력 다툼, 르네상스 이후의 활발한 무역 및 식민지 개척, 근데 이후의 산업화, 1, 2차 세계대전 등이 있습니다.

다른 테마로는 역사와 정반대 쪽에 위치하고 있는 판타지가 있습니다. 판타지도 나름의 깊은 세계관과 체계적인 규칙이 존재하기 때문에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게임에는 The Lord of the Rings 시리즈와 같이 친숙한 소설에서 테마를 차용한 것에서부터 Magic: The Gathering과 같이 게임을 위해 테마를 만들어 낸 게임도 있습니다.

한편 특별히 테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게임도 있습니다. 주로 고스톱, Tichu, Sticheln과 같은 카드게임이나 바둑, Yinsh, Zendo와 같은 추상전략게임, Halli Galli, Jenga와 같은 파티게임이 그러합니다.

테마의 역사성으로 구분하는 방법 외에 테마의 분야에 따라서도 게임을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전쟁 등이 많이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정치를 예를 들면 실제 독일의 정당정치를 다룬 Die Macher와 같은 게임이나 중세 에스파냐의 패권 다툼을 묘사한 El Grande와 같은 게임이 여기에 속합니다. 경제 분야에 속하는 게임에는 미술품 경매를 다룬 Modern Art, 미국 개척시대의 철도 건설을 다룬 Age of Steam,  스페인의 푸에르토 리코 식민지 개척을 다룬 Puerto Rico가 있습니다. 사회를 다룬 게임으로는 한 개인이 겪는 세상만사를 다룬 인생게임, 런던 경시청과 도둑과의 추격전을 다룬 Scotland Yard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쟁게임은 소위 매니아들을 위한 게임이 많이 있는데 소요시간이 2시간에서부터 며칠이 걸리는 게임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임으로는 Command & Colors 시리즈, 1차 세계대전을 다룬 Paths of Glory, 2차 세계대전 동부전선을 다룬 EastFront등이 있습니다.

2. 매커니즘에 따른 분류

보드게임에서 테마라는 요소를 빼내면 그 속에는 일련의 규칙들로 이루어진 시스템만 남습니다. 이 시스템이 돌아가는 매커니즘에 따라 보드게임을 분류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매커니즘을 하나 들자면 바로 주사위 던지기가 있습니다. 부루마블, 인생게임, Bluff와 같은 게임들은 주사위 던지기를 주 매커니즘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주사위 던지기는 카드 섞기와 마찬가지로 보드게임 진행에 있어서 우연성(무작위성, 랜덤)을 주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주사위 눈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선택한 매커니즘은 바로 경매입니다.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각종 자원들을 플레이어간 경매에 맡김으로써, 우연적인 요소를 줄이고 모든 책임을 주사위가 아닌 플레이어에게 지우는 것이죠. 경매를 사용하는 게임은 많습니다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이를 단독으로 사용하기 보다는 다른 매커니즘과 함께 사용합니다. 경매만을 다룬 게임으로는 High Society, Modern Art, Ra 등이 있습니다.

비록 경매가 주사위 던지기에 비해 우연성을 줄였다고는 하지만 경매의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다음 수를 미리 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액션 포인트는 모든 공을 플레이어에게 완전히 떠넘긴 매커니즘입니다. 액션 포인트라는 것은 각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어떤 점수입니다. 그리고 각 플레이어에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능한 행동(액션)들이 제공되는데, 각 액션을 수행할 때마다 플레이어의 액션 포인트는 감소합니다. 플레이어는 자신의 액션 포인트 내에서 가능한 행동들을 조합해서 최적의 수를 두는 것입니다. 이러한 액션 포인트 매커니즘을 사용하면 우연성의 요소가 없지만 각 플레이어가 오랜 시간 생각을 함으로써 게임 진행이 더뎌지고 플레이어간 상호작용이 적어서 게임이 무미건조해질 수 있습니다. 액션 포인트를 사용한 게임으로는 Torres, Tikal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자원을 서로 교환하는 교역(trade), 같은 종류의 자원을 모으는 플레이어에게 특혜를 주는 셋 컬랙션(set collection), 보드상의 각 지역을 점유하고 있는 플레이어에게 특혜를 주는 영역 점유(area control), 보드상의 빈 공간을 다양한 타일로 채워나가는 타일 채우기(tile placement), 2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협력 시스템(partnership), 카드게임에서 많이 사용하는 트릭 테이킹(trick taking) 등의 매커니즘이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하는 이유

제가 왜 그렇게 보드게임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보드게임에 들어있는 두 요소. 바로 테마와 매커니즘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으로써 저는 게임에서 테마를 제거하고 시스템과 매커니즘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조금을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순수하게 시스템을 자체를 분석하고 여러 게임들이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의 유사성을 알아보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드게임에 더 빠져들게 하는 요소는 뭐니뭐니해도 테마입니다. 친구들과 Axis & Allies를 하고 있으면 마치 제가 처칠, 루즈벨트, 스탈린, 히틀러가 되어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전략회의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Hammer of the Scot을 플레이하면 영화 Brave Heart의 한 장면이 떠오르면서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Wallace의 민족정신이 느껴지곤 합니다. Acquire에서 주식을 구매한 회사가 별다른 성장을 하지 못하면 KOSPI 지수가 1000이하로 떨어진 것 같은 절망에도 빠집니다. Pit에서 내가 원하는 상품을 하나도 거래하지 못하면 ‘난 역시 사회성이 없는 놈이야’라고 기분이 축 처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보드게임은 우리의 인생사를 축소시켜놓은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간략화된 또 다른 인생의 공간에서 우리의 삶을 모의로 살아가보는 것은 아닐까요? 1 평방미터도 안되는 테이블 속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경쟁하고, 때로는 협력하고, 주사위 결과 하나에 웃고 울고, 그러다 게임이 끝나면 승자는 기뻐하고 패자는 아쉬움이 많이 남겠지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그 결과에 승복하고,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함께 한 시간들을 즐거워하고, 마지막으로는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못다한 이야기들을 나눌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사랑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은가요? 오늘 저녁 보드게임 한 판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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